경기가 침체되면 실업률이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기업들이 신규 고용을 줄이고 기존 인력을 구조조정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서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더욱 심화되면 실업률이 다시 떨어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통계청은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어야 실업자로 분류하는데, 취업난에 절망해 아예 일할 의사마저 잃은 사람은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률 집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잃어버린 20년’에 진입한 일본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도 실업률이 단기 급등했다가 취업포기자가 늘어나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런 현상이 최근 한국 고용시장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비경제활동인구가 가파르게 늘어 역대 최다를 기록하는 등 고용 지표의 움직임이 장기 침체 국면의 모양새를 띠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8월 기준 비경제활동인구가 역대 가장 많은 1633만 명으로 집계됐다. 8월 12일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실직자들이 실업급여 설명회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지난 8월 기준 비경제활동인구가 역대 가장 많은 1633만 명으로 집계됐다. 8월 12일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실직자들이 실업급여 설명회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정부 “고용률 역대 최고”라지만…

지난 8월 고용률은 61.4%로 1997년 이후 동월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통계가 발표된 9월 11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결실을 맺어 고용 회복세가 뚜렷해지는 모습”이라고 기쁜 기색을 보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같은 날 “뚝심있는 일자리 정책으로 고용지표가 개선됐다”며 이런 해석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5일 통계청이 발표한 세부 통계를 들여다보면 정부 입장과 반대로 고용시장의 한파가 심해지는 모습이 역력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8월 기준 비경제활동인구는 1633만 명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99년 이후 같은 달 기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15세 이상 인구 중 가사나 학업처럼 특별한 이유도 없이 구직 등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쉬었다’고 답한 사람(217만3000명)도 역대 최다였다.

‘쉬었음’ 인구가 급증한 건 경기 침체로 휴·폐업이 늘고 고용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쉬었다고 답한 이유는 △몸이 좋지 않아서(41.7%) △원하는 일자리나 일거리를 찾기 어려워서(16.9%) △퇴사 및 정년퇴직 후 계속 쉬고 있음(16.3%) 순으로 많았다. 특히 △다음 일 준비를 위해 쉬고 있음(1.6%포인트 증가) △직장의 휴·폐업으로 쉬고 있음(0.7%포인트 증가) △일자리가 없어서(0.4%포인트 증가) 등 고용상황 악화로 쉬었다는 응답이 전년 대비 가장 크게 늘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질 좋은 일자리가 급감하면서 아예 취업활동마저 그만두고 ‘그냥 쉰’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최근 수출 감소 등 한국 경제의 체력이 약화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고용 좋아졌다"지만…실업률에 안잡히는 '장기 백수'는 급증
자영업자 구조조정은 더 심화돼

이날 통계청이 함께 발표한 ‘비임금근로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8월 기준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는 153만5000명으로 1년 전보다 11만6000명 감소했다. 8월 기준으로 외환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1998년(-29만6000명)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반면 직원을 두지 않고 혼자 또는 가족의 도움을 받아 장사하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412만7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9만7000명 증가했다.

정부는 지난해 취업자 수 증가폭이 1만 명대 이하로 둔화되는 등 ‘고용 참사’가 일어나자 “고용의 질은 좋아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가 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지난해에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가 10월과 12월을 제외하면 매달 늘었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매달 줄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8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증가하는 등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매달 감소하고 있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1월을 제외하고 매달 증가하는 추세다. 작년과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이 상황에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동욱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내수가 안 좋아 40~50대 위주로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취업하지 못해 신규 창업하는 경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로 출발하는 사례가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 비경제활동인구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구직 단념자’, 학업·육아 등을 이유로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 등이다. 15세 이상 인구 중 구직활동을 하면 실업자로, 1주일에 1시간 이상 일하면 취업자로 분류되는데 비경제활동인구는 실업률 계산에서 제외된다.

성수영/이태훈 기자 syoung@hankyung.com